top of page

[ 성격 ]

 

선 :: 과거에 힘든 일을 겪었던 탓인지, 유난히도 깊은 관계를 이어가기 어려워했다.

그는 편견을 가지고 모두에게 날을 세웠다간 주변에 아무도 남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고 생각해 먼저 타인에게 다가가면서도, 그는 또다시 사람에게 데일 것을 두려워해 깊은 관계로 발전하는 것을 망설이고,

고민하다 결국 자신의 오른손을 만지작거리며 선을 그어버리곤 했다.

 

'이해한다는 말을 쉽게 하지마렴, 우리 사이에 이해 같은 건 처음부터 없었단다.'

 

 

[ 과거 ]

 

1.

사랑의 언약하지 말 것을, 그러했다면 님도 나도 이런 원망 없었을 텐데.│(백인 일수 44. 중납언 아사타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다정했던 아버지가 갑자기 변해버렸다. 마치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양 어머니를 다그치고, 몰아붙이는 아버지에게

어머니는 언제나 울면서도 아버지와 맞서 싸웠고, 조용하고 평화로웠던 집안은 부부싸움이 끊이지 않는 전쟁터가 되어버렸다.

 

절망적인 집안의 분위기 속에서 어린 그가 의지했던 것은 단 하나, 백인 일수의 따뜻한 사랑 이야기들.

이런 상황에서 백인 일수를 의지하고, 좋아했던 그가 카루타를 시작했던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지 않았을까.

 

그가 카루타를 시작하고, 명인 자리에 올랐을 때, 어머니는 결국 이혼을 강행했고, 그는 어머니와 함께 살게 되었다.

 

주변에서는 아직 어렸던 그가 슬퍼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그는 부모님의 이혼 소식을 들었을 때 오히려 기쁘다고 생각했다.

 

이로써 더는 사랑하는 가족들이 싸우는 모습을 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기에.

 

2.

신화에서도 들어보지 못 했네 타츠타 강에 곱디고운 단풍 빛 물들어 있다고는.│(백인 일수 17. 아리와라노 나리히라 조신)

 

그의 오른손은 굉장히 정확해, 오직 하나의 카드만을 골라 깔끔하게 쳐냈으며, 결코 주변의 카드를 함께 날려 버리는 일이 없었다.

오직 하나뿐인 카드를 다른 카드와 함께 쳐내는 것은 그에게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쳐내는 카드의 수가 하나둘씩 늘어가면

늘어 갈수록, 그는 자신의 오른손을 사랑하고 아꼈다.

 

3.

대체 누구를 벗으로 삼겠느냐 타카사고의 백 년 솔조차 나의 옛 친구가 아닌데. │(백인 일수 34. 후지와라 오키카제)

 

비슷한 시기에 카루타를 시작했던 동년배의 동기가 있었다. 그는 동기와 가깝게 지내왔으며, 서로를 잘 이해한다고 생각해왔다.

 

"명인을 가르는 결승전에서 아름다운 대결을 펼쳐보자! 약속이란다"

 

어렸던 그의 꿈은 매우 소박했다. 그의 나이 14세, 5번째의 명인전이었다. 결승전을 앞둔 휴식시간. 그것은 아주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자신에게 말을 걸어온 동기는 펄펄 끓고 있던 커피포트를 그의 오른손에 쏟았고, 그의 오른손은 그가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이미 화상을 입어 새빨갛게 익어있었다.

 

오른손이 뭉개지면 뭉개질수록, 동기의 얼굴에선 웃음꽃이 피었다. 그는 아직도 그날의 일을 잊지 못한다.

 

4.

누구 때문에 어지러운 문양처럼 흐트러졌나. 어지럽게 물든 내 맛이 아닐진대.│(백인 일수 14. 카와라의 좌대신)

 

그에게는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에게 배신 당했다는 슬픔보다, 손을 다쳤다는 분노가 컸다.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카루타를, 자신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오른손을 망가트려 짓밟으려 했던 동기를 용서할 수 없었고, 때문에 더더욱 명인전을 포기할 수 없었다.

얼마 남지 않은 결승전 시간, 그는 급한 대로 오른손을 천으로 똘똘 싸매고는 동기와 대결을 펼쳤다. 그의 왼손은 그의 오른손과

분노를 대신해 카드를 쳐내가며 가차 없이 동기를 짓밟아 주었고, 그는 언제나처럼 압도적인 승리를 거머쥐었다.

 

그날, 그가 보여준 카루타는 사랑의 붉은 실이 아닌 날카롭게 날이 선 분노 그 자체였다.

 

 

5. 언젠가 지금의 괴로움도 그리울 테지. 힘들었던 그 시절 자꾸만 생각나듯.│ (백인 일수 84 후지와라 키요스케 조신)

 

명인전에서 패배한 뒤, 동기는 조용히 업계를 떠났다. 그날, 그 자리에서 사고를 목격한 것은 그와 동기 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가

오른손에 화상을 입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이외에 아무도 없었다. 자신의 망가진 오른손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던

그는 응급처치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화상을 숨겼고, 치료 시기를 놓쳐버린 손은 더 이상 아릅답게 빛났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그가 카루타 경기를 치르며 사용하는 손이 갑작스럽게 오른손에서 왼손으로 바뀐 탓에, 이전에 단 한 번이라도 그의 경기를 본

사람들은 그에 의문을 품고 억측을 내놓기 시작했다. 강인하고, 아름다운 카루타를 하는 다다미의 왕이라고 불렸던 그가 남에게

드러낼 수 없는 끔찍한 사고를 겪고, 더는 이전과 같은 카루타를 할 수 없게 되었다는 소문이 널리 퍼지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뭐 어때. 그는 여전히 명인의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초 세계급 타이틀마저 달고 있는걸.

 

 

 

[ 기타 ]

 

 

보상

 

막대한 돈! 누군가에겐 혹할 만한 조건이었다. 개인에 따라 가치의 크기는 달랐기에 그에게 있어서 돈의 가치란 한순간에 져버리는

쓸모도 없는 것에 불과했다. 쉘터 밖에 혼자 계시는 어머니를 쉘터 안으로 모셔오는 건 어떨까, 잠깐 생각했었지만,

역시 그만두기로 했다. 왼손은 오른손 못지않게 부족함 없이 제 몫을 다 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오른손이 그리웠다.

 

시기를 놓쳐버린 탓에 흉하게 일그러진 오른손을 죽을 때까지 가지고 가야 한다는 것은 수치였고, 과거에 발목 잡혀 있는 자신의

모습은 아름답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아름답고 화려하게 빛났던 오른손이 본래의 모습을 되찾길 원했다. 

한순간에 져버리는 것들과는 달리, 적어도 자신의 신체는 죽기 전까지 영원할 것이기에. 그는 초대장을 들고서 너에게 묻는다.

 

"무엇이든지~? 그럼 이것도 고칠 수 있니?"

 

 

[ 소지품 ]

"허니는 카루타 카드로 뺨맞아 본 적 있니?  "

bottom of page